# 무솔리니의 창작품 파시즘(파시스트) 개요
(1) 독일 나치당 수장 아돌프 히틀러가 정치 멘토의 대상으로 삼은 이가 이탈리아 베니토 무솔리니다. 또한 일본 군국주의(제국주의)의 창시자격 인물인 도조 히데키 역시 이 인물을 추앙했다. (도조 히데키는 한국 독재자의 롤모델로 이해하면 된다.)
(2) 흔히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히틀러의 손을 뻗치는 행위는 무솔리니가가 가져온 경례법이였다. 또 나치당의 상징 독수리 문양 역시 히틀러의 창작품이 아닌 고대 고마제국의 상징을 무솔리니가 채택하여 선전선동의 방편으로 사용했다. 그만큼 히틀러는 무솔리니와의 관계에서 뗄 수 없는 정치적 동반자이다.
#태생과 성품 요약
(1) 베니토 무솔리니는 1883년 이탈리아 태생으로 아버지는 식당을 하셨고 어머니는 교사를 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성품은 평범하지 않아 학창시절에 폭력적인 면모로 다른 아이들에게 군림하였다. 특히 시비가 있을 때 각목, 벽돌등의 위험물을 사용했다 전해 졌는데 흔히 사이코패스 성향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급생에게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히게 한 일화도 있다.
(2) 성인이 된후 그래도 명석한 두뇌가 있어 교사로 취직한 게 되었지만 역시 포악한 성품에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긴 힘들었다. 매일 술독에 빠져 근무태반에 학생부모와 논쟁으로 폭력사태가 일어나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 사회주의와의 교우
무솔리니는 학교에서 쫓겨나자 마자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나라인 스위스로 건너갔다. 이때 스위스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 만연해 있어 접목하게 된다. 이때는 그가 20살이 된 첫 정치 걸음이었다.
당시 시대 상황은 흔히 말하는 자본가, 기업가와 노동자와의 불평등 관계로 인해 평등사회, 자본주의 타도가 유럽사회 전체에 만연히 퍼져있었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로 돌아가 사회주의 사상을 퍼트리는 계획을 한다. 일각에서는 개인의 이익행위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 선동가
무솔리니는 명석한 두뇌였던 만큼 연설에 특출 난 재능이 있었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후 각종 신문사나 잡지 그리고 광장에 나가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는데 당시 과격했던 기존 사회주의자와는 다른 행보인 평화를 주장한다. 사회주의 전쟁에 나가면 노동자만이 불행 해진다란 슬로건으로 폭발적인 지지를 받게 되어 단순 간에 정치 거물로 변모하였다. 이후 잡지의 편집장이 된 후 계속해 평화와 노동자를 위한 삶을 주제로 글을 쓴다.
# 거짓 사회주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무솔리니는 전쟁 전까지 평화를 주창하던 사람 이었지만 전쟁 발발 후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후 이탈리아 참전을 종용했다. (현대에 이르는 역사적 평가에서 무솔리니는 이념을 이익 수단으로 봐서 사회주의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패권국으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 이유였다. 당시 이탈리아의 왕이었던 엠마누엘 3세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 드린 것이다.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 거짓 사회주의자의 반 사회주의 이념 제작
1차 세계대전 독일의 패전으로 막이 내린 후 동맹국으로 이탈리아 역시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위기를 맞는다. 전쟁 결과
이탈리아 국민 65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노동자들의 삶은 피폐하여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전국적인 노동자 파업의 시작이었다.
이 당시 무솔리니는 당시 이탈리아의 망국적인 조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킨 결과라며 빨간색 프레임을 만들어 사회주의자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과거 평화를 주창하던 사회주의자 무솔리니였는데 말이다.
선전의 결과 무솔리니와 의견을 일치한 단체들이 생겨나 곳곳에서 좌파 노동자들에 대한 테러가 발생한다. 이탈리아 정부에서도 파업에 대한 진압으로 한국의 백골단 같은 단체를 만들었다.
이때 무솔리니는 새로운 사상을 창작을 하는데 이 노동자 시위에 대한 반발작이었다.
# 전기 파시즘
1919년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파시즘이란 사상이 만들어진다. 파시즘은 간단히 말해 하나의 사상을 목표로 사회구성원의 하나의 단결을 말하는데 이것이 '전체주의'이다.
(여기서 파시즘이 사회주의 이념의 파생이념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시겠지만 정확히 말해 반사회주의 이념으로 사회주의자 노동자 척결을 목표로 생산된 이념입니다. 당시 제1의 목표가 노동자의 시위진압이었습니다. 또한 공평분배의 공산주의 원칙이 아닌 자본주의와 경제방임주의를 채택한 가진 자를 위한 정책 그 자체입니다.)
국가 시스템 내에서 전체주의를 벗어난 개별행동을 하지 말고 국가를 위한 희생은 당연하며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신념 강요가 동반됩니다. 당시 이탈리아 왕권을 등에 업은 무솔리니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 강력한 군중심리
선동가의 연설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파시즘에 열광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국민들은 파시즘이란 우리 안에 들어서 심리적 안정을 얻었던 것이다. 무솔리니외에 파시즘에 심취한 파시스트들이 곳곳에서 활약하게 되었는데 강력한 어투와 극단적인 언행으로 공포심 또한 조장되었다. 그때에 전체주의를 벗어난 반 파시즘은 죽이자란 말로 극단적 폭력성을 뛰게 되는데 이 파시즘이란 우리 안에 들어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1919년부터 1922년 즘 까지 단기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 무솔리니의 검은 셔츠단과 권력쟁취
파시즘의 태동으로 각각의 선동가들에 의해 이탈리아는 이념에 의해 점령되었다. 명석한 두뇌에 뛰어난 연설의 무솔리니는 이들 세력을 흡수함으로써 그 세력이 이탈리아 왕권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규합한 세력 중에 검은셔츠단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셔츠를 입은 파시즘 단체의 행동대원으로 반전체 주의자들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던 일종의 군대의 역할을 했다.
무솔리니는 이들을 이끌어 쿠데타에 성공해 스스로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당시 왕이었다 임마누엘 3세는 파시즘 세력에 굴복하게 되어 사실상 왕권은 없어지게 되었다. 명목상으로 만 왕의 자리를 유지한다.
# 역사의 반복 쿠데타의 성공은 반대파의 숙청
스스로 총리가 된 무솔리니를 향한 거센 비판이 있었다. 당시 파시즘 반대성향의 사회당의 정치인들이었다. 이 사회당의 정치인들은 파시즘이 아닌 극우 파시라고 맹렬히 비판하였는데 전기 파시즘의 순수 전체주의가 아닌 선택적 전체주의인 후기 파시즘을 비판한 것이었다. 그럴 것이 전체주의라 하면 왕권을 수호하고 그 아래의 왕령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 맞지만 , 스스로 전체주의의 주인이 된 그를 향한 직접적인 비방이었다.
반대당인 사회당 총수는 로마 수도를 걷다 실종이 된다. 2주 후에 시신으로 발견된 후 검은 셔츠단의 소행임이 밝혀지게 된다.
# 윤석열의 비상계엄과 오마주 되는 무솔리니의 비상사태 선언
사회당 총수 살해사건으로 무솔리니는 또 다른 선동을 한다. 반이탈리아 세력(반국가 세력)이 준동하여 이탈리아의 혼란을 야기하니 뿌리 뽑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했는데 현재의 대한민국과 너무나 비슷한 면이 보인다. 당시에 모든 신문, 잡지를 통제당했고 시민들이 자유로운 통행조차 방해받았다. 역시 모든 정당활동을 정지 당해 의회는 해산되었다. 이탈리아의 국회의석수는 400석이었는데 파시스트 정당이 400석을 모조리 차지한 초유의 독재 일당 체제로 바뀌었다.
이 사건은 무솔리니가 독재자로 불리게 된 결정적 일 이였다. 계엄의 성공은 단 1인이 국가 전체를 휘두를 수 있는 억압의 시작이자 독재 국가의 발판이다. 민주주의의 반대어가 독재주의라는 분명한 역사이기도 하다.
# 나치즘의 모태 파시즘
독일의 히틀러는 이 무솔리니에 대해 무한한 찬사를 보냈다. (끼리끼리 논다고 독재자는 독재자를 존경한다더라 러시아 푸틴도 박정희를 존경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후 집권한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강력한 강철 동맹을 맺게 되는데 이것이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었다.
#비참한 독재자의 말로
무솔리니는 2차 세계대전 종전후 최고 권력자에서 도망자 신세로 쫓기게 된다. 결국 그의 생애는 총살로 인한 즉결처형으로 마감하게 되었다.
---(공부후 소감)
개인적으로 좀비라고 표현되는 저들 극우세력들을 이해 하려 계속해 파시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파의 극단인 극우라는 단어표현을 쓰기에 아깝구요. 그 이해하기 힘든 '자유민주주의' 제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유에는 책임을 전제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들의 행태는 매우 심한 무책임 입니다.
파시즘에 동반되어 쓰이는 선전선동은 거짓말과 음모론을 포함해 극좌 사회주의인 북한과 다를바 없고, 예전 이재명 피살했던 국민의힘 지지자는 그 검은셔츠단의 폭력성에 걸맞게 징역 15년을 맞았더라구요. 서부지법은 뭐 다들 5년이상 형법 예상 하시죠? 전광훈은 사상을 계속해 주입하고서는 책임이 없다 말합니다. 전한길은 밝혀지지 않는 선거부정에 말하면서
본인은 중도라고 하는데 그게 중도 맞나요?
핸드폰 몇분만 쳐다봐도 팩트 확인 가능한 부분이 상당수 입니다. 그 팩트에 기반해 좀 이해라도 시켜주면 듣기라도 하지요. 그냥 듣다 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데 어떻게 신뢰감 있는 사람이 될수 있는지요?
그래서 변화무쌍하고 이익행위에 의존하는 파시즘이 한국형 파시즘으로 변화된 이해공부는 계속해 봐야 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대한민국 법치를 논할때 저들의 여야정쟁으로 몰고가는 프레임에는 휘둘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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