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공부) 성매매 합법화한 대통령 박정희 / '워커힐 호텔사건' 요약
# 박정희 정권의 시대 상황
어느 나라나 그렇듯 독재정권의 출범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공포정치를 하며 권력가들의 부정부패가 판을 만드는 반민주주의로 발전한다.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도 마찬가지로 당시 시대 정황을 적용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강요로 국민들의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던 때였다.
박정희 정권의 공과에서 현재의 보수 국민들은 "박정희 정부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뤄내 살기 좋았을때 ", 당시 박정희의 지지는 절대적 이였다."라 했으나 일부 왜곡이 심한 주장이며 시민사회에서의 통치 방식의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 경제성장의 어두운 이면과 팩트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게 한 주역으로서 박정희의 공은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면으로서 자행된 불법적인 행태를 규탄하지 않을 수는 없다.
첫째로 국민 노동력 착취이다. 그저 도구로서 전락해 버린 국민들의 저항은 박정희 정권 내내 계속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노동력 착취를 저항한 '전태일의 분신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로 답답했던 그 시대를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둘째 반독재주의인 민주주의의 태동이다. 학생 운동권과 당시 진보정치의 신민당은 박정희 집권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셋째로 공금의 횡령범죄가 당연시 되었던 시기였다. 베트남 전쟁보상금이나 일본 식민지 배상금은 피해자에게 쓰이지 않고 권력가들이 따로 횡령하거나 사업에 투자했는데 이것은 분명한 국가폭력의 한 행태로 비판 가능 하다..횡령 사례는 박정희 정권내내 이뤄진다.
# 박정희 독재 정부에 대한 저항은 사형
국가의 횡포는 당시에도 공공연히 드러났던 사실이였으며 이로 인해 박정희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개인이나 단체들은
곳곳에서 생겨 난다. 이런 반 독재의 목소리들은 부당한 형법으로 탄압을 받게 된다. 대표적으로 인민인혁당 사건으로 십 수명이 사형당했다. 학생운동을 하던 저항 가는 끌려가 매를 맞아 죽는 일도 발생했다.단순 피해자 까지 집계하면 그 수는 수백만명에 이른다.
# 박정희의 4대 의혹 中 가장 악랄했던 워커힐 사건
박정희의 부정부패의 한 부분으로 현재 시가로 수십조에 이르는 정치 비자금 조성에 국민을 도구로 만들어 버린 사건이다.
특히 쿠테타로 정권찬탈의 부당위성이 만연했던 박정희 정부가 유지되는 정치 공작금으로 쓰이게 된다.
# 워커힐 사건 요약
의미 없는 막대한 건설사업을 발주하여 공사비를 부풀리고 착복하기 위해 했던 정치공작 부정부패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외화벌이를 명분으로 윤락시설인 워커힐 호텔건설을 구상한다. 주한미군들이 휴가 때 일본으로 가서 즐기고 달러를 쓰고 온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 윤락시설은 호텔급으로 구상되었으며 서비스 구성에 술과 도박 그리고 매춘부를 끌어들인다. 심하게 말해 한국여성들을 미군에게 팔아먹은 일이었다.
# 당시 워커힐 사건은 비난의 대상, 언론보도
(1) 미국 언론 - " 이 시설은 매춘굴, 카지노, 미인 호스티스등을 갖추고 있다.
(2) 미국 미군 부인단체 - 박정희를 향한 직접적이고 강력한 항의성 비난
(3) 일본 언론 - "한국의 군사정권이 미군 장병을 끌어들이기 위해 술과 여자와 도박판 위주의 시설을 짓고 있다"
(4) 동아일보 - 국민 도덕의식의 마비도 불사 하겠다는 것인가? 국민의 도덕의식을 마비시켜야 이뤄지는 그런 근대화나 건설을 국민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5) 동아일보 - "우리가 첫째가는 후진국이라 해도 위정자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도덕의식을 수호하는 것"
(6) 뉴욕타임스 - "군사정권의 시대착오적인 계산으로 국고만 소모되었다"
# 비자금만 챙긴 허울뿐인 건설 비리
워커힐은 1961년 9월에 착공해 1년 만에 완공한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공사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을 정치자금으로 착복했는데 현재가 10조 원 규모에 이른다. 국가예산의 0.6% 였다.
현재에도 논란인 박정희의 과거 위법적 행태는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오로지 경제성장을 시켰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위대한 지도자인 것처럼 떠 받는 게 합당한 건지 참 의문스럽군요. 워커힐과 유사한 행태는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고 친위를 위해 국민들의 인권은 버렸습니다.
끝으로 극우파시스트 당신들 부모세대가 그 시대 주역이었으며 노동자였던 분이 많았을 텐데 어찌 그렇게 무지합니까?
박정희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었습니다. 뭔데 그렇게 집회에 나가 박정희 편에 서서 민주주의를 부르짖나요? 또 파시즘이 범죄에 가까운걸 왜 모르쇠 하나요? 박정희가 부도덕하니 따라 하는 건가요?
내 단연코 말하는데 보수의 근원은 박정희, 이승만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아닙니다.
보수란 민주주의의 한 부분이며 민주주의의 반대체제가 독재체제입니다. 87년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작이라는 말 이해가 가시나요? 공부 좀 합시다.